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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들에 대한 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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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이재 댓글 9건 조회 1,657회 작성일 06-06-29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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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종교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터라면 조금은 이해가 될까.

아직은 동절기, 눈 앞에 매실나무가 꽃을 피워 향으로 눈과 코를 자극함에도 무심히 지나쳤고,
그게 그렇게 유명한 매화라는 것조차도 까맣게 모르고 지냈었다. 퍽 오랫동안...
감꽃을 끼워 목걸이를 만들고 온 동네를 휘저으며 다녔으면서도 그 풀이 골풀이란 것을 알게 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지나간 유년의 기억들이 오늘 밤은 새롭다.

나는, 살아온 날들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보냈다.
지금은 몇 안 되는 빈가들만 남아 쓸쓸해졌으나 한 때는 시끌벅적 산골을 울리는 기침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깨며 들판을 넘어다녔고, 바람결에 휘날리는 두루마기 자락에 지축이 흔들렸었다.
마당가 비탈진 방죽엔 여러 식물들이 어울려 살았고, 3킬로도 더 되는 먼 곳에 학교가 있었다.
면소재지랑 파출소, 그리고 문방구가 있었던 번화가?...고향을 떠난 후로도 여러 이유로 자주 드나들었던 고향이지만,
입학 무렵의 생생한 기억은 면소재지의 굽은 소나무와 학교 뿐이다. 

열한 살, 이사를 하면서 전학을 하게 되는데 같은 郡이면서도 탯줄을 묻은 산골마을과는 달리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바다가 지척인 곳이었다.
여러 校舍가 있었던 고향과는 달리 2부 학부제를 실시하는 단 두 칸의 교실, 복도를 임의로 막은
교무실과 운동장도 없던 마당끝 풀더미에 땅을 파고 작은 기둥을 세워 짚으로 둘러친 간이 화장실...
어린 마음에도 기막힌 광경이었던 그때, 실망을 감추지 못했었는데 또래 아이들은 한뼘정도
크고 거칠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4학년이 최고 학년이었으므로 그대로 쭉 상급반으로 올라 졸업하게 되었고,
영광스럽게도 제1회로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방통을 졸업하시고 초임 발령 받아오신 선생님과 졸업 때까지 3년의 인연,
고사리 손으로 돌멩이와 모래를 이어날라 마당을 다듬어 운동장을 만들었고,
뻘땅을 흙으로 메꿔 실습지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 움트고 자라서 각별해진 사제간의 사랑...속에
구덩이를 파고 인분으로 거름을 삼아 호박을 심고, 고추 모종을 하며 지줏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쑥갓과 상추를 심어 꽃이 필 때까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학교 울타리에 미루나무와 편백을 심어
무성히 자라는 동안 짬짬히 도심으로 수학여행도 다녀오고 운동회도 하는 멋진 시간들도 즐길 수 있었다.
학교 밖으로 툭 트인 저수지가 있었는데 수풀이 우거진 가장자리쪽엔 이름모를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어른들께서 흔히 하시는 말씀 말곤 따로 물어볼 생각을 그땐 안 했었나보다.
**
기억의 끈을 풀려니 끝도 없다. 지워진 친구들도 생각나고 잊혀진 스승님도 되살아 난다.
모두가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어디서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증도 도진다.
이 밤에 넋두리라니...여름밤은 이제 시작인데 벌써 더위 먹었나 보다. ㅠ.ㅠ

어쨌거나, 여기저기 올려진 사진과 글들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젖어보았다.
잊었다가도 다시 뒤져보면 그때의 흔적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진속의 풍경은 아닐지라도
가슴속에 묻어둔 지난 이야기 하나쯤 누구에겐들 없겠는가.

잊을 수 없는 유년의 기억만큼이나 요즘의 내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 중에 하나가
여행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다.
계획에도 없던 어느 산행에서 만났던 봄꽃들...괭이눈과 큰괭이밥, 얼레지, 금붓꽃, 바람꽃,
처녀치마, 할미꽃, 족도리풀, 제비꽃, 개별꽃 등등 짧은 계곡에서 스무 가지가 넘는 야생화를
볼 수 있었던 그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추억은 내가 살아가는 데 더 없는 힘이 되어준다.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평소 아껴주시던 지인의 소개가 있었는데 그게 벌써 일 년 전이다.
이젠 제법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고, 그 중엔 그리움으로 자리를 잡아
아예 추억으로 간직된 것들도 생겨난 것이다.

인생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나간 것은 추억이요, 남은 것은 희망이다'라고 말하겠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 오른다.
얼마나 공감이 가던지...

요즈음 나는, 그리운 것들과의 재회를 꿈꾸며 하루를 산다.

댓글목록

김진옥님의 댓글

김진옥 작성일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꿈이 있어 아름다울 수 있나 봅니다.이이재님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은 첫발령지로 달려갑니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허리춤에서 어깨로 매어올린 책보자기에는 보석보다 더 빛나던 꿈을 담고 있었던 아이들......그아이들이 소먹이로 가던 그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크로바 ,우산풀꽃 ,할미꽃...그리고 이름몰랐었던 풀꽃들과 양철 지붕의 교실에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이제 막 끝난 영화의 잔향마냥 그리움이 쌓여오네요.내일은 우리반 꼬마들 데리고 한바탕 풀꽃 축제를 열고 싶어지네요.

박대철님의 댓글

박대철 작성일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묻어둔 자기만의 그리움이 있겠지요.살면서 조금씩 꺼내보고 아파하고 ,또 새로운 그리움이 쌓여가고... 그리움도 일종의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겠죠.

우정호님의 댓글

우정호 작성일

  저도 고향가면 어릴적 노닐던 곳을 하나하나 담아 오고 있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김종건님의 댓글

김종건 작성일

  저는 고향에 가면 어릴 때 살던 집은 흔적도 없고 새로 이사한 집은 있지만 그도 변형이 많이 되어서 엣날은 흐희미해져 갑니다. 그래도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니 여전한 안식처이지요.

제미숙님의 댓글

제미숙 작성일

  고향, 시골, 자연이라는 소중한 기억 저 편의 이야기가 추억으로, 그리움으로 아련히 떠오릅니다. 지나고 나니 그때가 좋았더라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언젠가의 오늘도 좋으리라고... 희망합니다.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그리움이야 죄가 있나요.내가 그리워하니 자꾸 안타까워지고 더 그리워지는 것이겠지요.만약 우리의 삶에 그리움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헌데 그리움을 제대로 풀지 못해서 안타까운 건 행복인지 불행인지? 그리움이 모두 풀린다면 (?-그런 날이 올 리도 없겠지만) 또 사는 건 어떤 의미를 띄고 다가올까요.그리움이 있어 추억도 있고 사는 기쁨이 있지만 그리움이 있어 안타깝고 아쉬운 삶이겠지요.

이금선님의 댓글

이금선 작성일

  나이가 들수록 어린시절 추억은 더 생생히 떠오르는것 같습니다

김익중님의 댓글

김익중 작성일

  ㅎㅎ, 참으로 아련한 추억여행이었네요. 이이재님, 글 정말 고맙습니다.

이이재님의 댓글

이이재 작성일

  ㅠ.ㅠ 20년 정도?를 끝으로 그 작고 이뻤던 시골 학교는 폐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잡목으로 우거진 교정, 깨진 유리창...아이들의 힘찬 함성이 사라져버린 운동장에 한참을 서 있었는데 어찌나 가슴이 휑하던지요. 100호가 넘는 마을에 아이들이라곤 겨우 너댓명이 전부라는데 갈수록 점점 인적이 뜸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