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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비싼 값을 치를뻔한 고운 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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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영 댓글 10건 조회 2,912회 작성일 07-10-0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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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월 된 외손녀가 코에 바람이 들어 자꾸 드라이브를 조르는데
모처럼 구절초와 해국을 볼 겸 산골짜기를 헤매기로 하고 동해안으로 출발.

10시 20분에 초막을 나오자마자 우회전으로 56번 국도를 5분여 가면 하뱃재를 만나
다 오르면 T자형 삼거리가 바로 홍천군 내면 율전리 소재지.
물론 창촌으로 해서 내면 소재지를 거쳐 구룡령을 넘는 길도 있지만
좌회전해서 우측의 율전초교를 두고 고사리재를 넘는 길로 30여 분을 가면 인제군 상남면 소재지.

미산계곡길을 택할까 하다가 버리고 현리를 향해 오미재재를 넘어가
인제군 기린면 현리입구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면 방동약수와 방태산 휴양림을 지나 진동계곡.
고사리재에서 바위에 자라고 있는 화사한 구절초들을 만났지만
차를 세우기 곤란해 지나친 게 영 걸린다.
어느새 이렇게 많이도 피었는지 노란 산국들이 화사히 웃는 모습도 모두 뒤로하고
개쑥부쟁이들의 유혹도 못본 척 하고
개미취,각시취,미역취,억새들이 쉬어가라는데도 길을 멈추지 않고
이제 곱게 물들어가는 개옻나무나 붉나무가 불러도
얼른 하조대로 가 해국을 만나려는 마음으로 재촉하는데
조잘거리는 계곡물들은 속살을 맑게 들어내고 쉬어가라며 붙잡는다.

얼른 바다로 가 이쁘니들을 만날 생각에 길을 서두르는데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진동계곡을 가다가
분홍같기도 하고 보라에 가깝게도 보이는 구절초를 다시 만나 길가에 차를 세운다.
이리 찍고 저리 찍으며 바위를 오르고 미끄러지기를 거듭하다가
다치거나 디카를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싸리나무를 잡고 벌러덩 누워야 하는 위기도 맞고
한참을 고생하고는 가져간 냉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담배 일발 장전.
조금 쉬었으니 다시 동해안을 향해 앞으로 전진.

설피밭을 향해 가다가 널따란 갈대밭을 지나자니 전봇대가 밉기도 하고 아직 덜피어 통과...
점봉산 곰배령으로 향하기 한참 전에서 조침령 터널로 들어선다.
구길을 택하고 싶지만 13년이 되는 고물 구루마가 영 찜찜해 새로 뚫린 터널을 택하기로 한다.
터널을 지나 꼬불꼬불 길기도 한 길엔 짙은 색상의 꽃향유들이 좍 깔려 또 쉬어가란다.
마음을 다잡고 조침령을 내려와 좌회전으로 양양행.
송촌 떡마을도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드디어 하조대로 들어가는 좁은 마을길로 들어서 파도도 보여줄 겸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파도를 구경하게하고 바위를 기어올라 해국을 몇 컷 담아본다.
다시 되돌아 하조대 주차장에 차를 안전하게 주차하고 근심을 덜어내고
우연히 뒷주머니를 뒤지니 아불싸 지갑이 주인을 떠나버렸다.
시치미 뚝 따고 하조대를 한바퀴 휘휘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정신이 왔다갔다 한다
지갑엔 30여만원이 들어있고 각종 쯩과 카드,비상연락 쪽지가 들어있다.
주차장에 도착해 어쩔 수 없이 집사람한테 이실직고하니 즉시 되짚어 찾으러 가잔다.

아무래도 진동계곡에서 구절초를 담을 때 엎어지고 자빠지고 구르고 했으니 거기서 빠진 것 같긴 한데
뒷주머니는 찐드기로 뚜껑을 덮게돼 있는 호주머닌데 지갑이 없어진 이유를 모르겠다.
기분이 영 찜찜해 더 꽃들을 만날 기분도 아니라서 오던 길을 거꾸로 모두 헤매기 시작.

해변의 동글동글하고 꽃잎이 짧은 산국도 모두 뒤로하고 다시 진동계곡 까지 되돌아오니
아니나 다르랴,싸리나무를 잡고 거꾸로 매달리다시피한 그 싸리나무 아래에서 지갑이 쉬고 있다.
휴우~~!! 그제서야 배도 출출하고 허기가 느껴지지만 기분만은 홀가분해졌다.
다시 냉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를 꼬나물고는 걱정을 덜어낸다.

이제 어떡한다? 되돌아 가 바닷가를 헤맬건가 아님 이대로 초막행 할까...
요새 여섯시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시간은 오후 두시 반을 훌쩍 지나고 있었다.
집사람은 건성으로나마 해안가를 둘러봤으니 집으로 돌아가잔다.

헌데 그럼 동해안으로 간 보람이 모두 허탕이 되고 마니 너무 허전하지 않은가.
얼른 주문진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하고 차를 180도 돌려 다시 조침령을 넘는다.
가다가 송천떡마을에서 떡을 두어접시 사고는 차를 몰면서 시장끼를 면한다.

주문진에 들러 서둘러 해변도로를 헤매며 해국들을 만나고는 산국도 뒤로 하고
 해란초와 참골무,두메부추,산부추들이 아쉽지만 오늘은 서운함으로 대신한다.
다시 조침령을 넘으니 노을은 붉어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진동계곡의 어스름을 가르며 현리로 나와 상남에 오니 천지가 깜깜해진다.
상남에서 다시 속사로 가는 길로 율전을 향해 고사릿재를 넘을 때는 완전한 암흑.
집에 도착하니 세상은 고요하고 천지는 깜깜한데 별만 몇이 반짝이는 여덟시가  된다.

휴우~!! 오늘 강행군을 했지만 기분은 홀가분하다.
늦은 저녁식사엔 내가 술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짝지가 애썼다며 소주를 내놓는다.
그 곱던 구절초들,산국들,쑥부쟁이들,꽃향유들이 머리를 스치고
 만나지 못한 해란초,참골무,두메부추,산부추 등이 아쉽다.
다른 녀석들은 제대로 봐주지도 못하고 서두른 길이 되어버렸다.
하마트면 꽤나 비싼 동해안행에 값을 톡톡히 치르고 구절초와 해국을 만날 뻔 했다.
이쯤 되면 어느 분의 닻꽃값 보다 비싸지려던 꽃들을 공짜로 잘 보고 온 셈이다.

허지만 싸간 점심도 먹을 새가 없어 거르면서 꽃에 미치는 사람들의 기분을 모르지 않는다.
우리는 편히 앉아서 담아온 고운 꽃들을 만나지만
열심히 꽃들을 올려주는 회원들이 있어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음을 어찌 모르랴 !!
고운 꽃들을 담아오는 사람들은 비용도 만만치 않게 소요되는데다가
때로는 매우 위험한 고비도 만나고 숫한 고생을 하고 겨우 한 두장의 사진을 얻기도 한다.
어떤 경우엔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죽게 고생하고도 한 장도 건지지 못하는 때도 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겨우 한 두 마디 댓글을 달아 격려해주는 일이 고작인데
요샌 그마져 자꾸 줄어드는 것 같아 이 방이 좀 침체된 건 아닌가 싶어 아쉬운 기분도 든다.

댓글목록

류병열님의 댓글

류병열 작성일

  한장한장이 전부 소중한 사진들임을 잘알고 있으면서도 댓글에 소홀했던 저부터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구절초가 가을 임을 알려주는것 같습니다.좋을 하루되세요.

이태규님의 댓글

이태규 작성일

  휴~ 제가 마치 숨가쁜 여행길에서 돌아온 기분 입니다. 비록 댓글에는 소홀했지만
 즐거움은 함께 하고 싶습니다.

박대철님의 댓글

박대철 작성일

  왠지 댓글도 시들하고 활동도 그저 그렇고 ,무엇인가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송정섭님의 댓글

송정섭 작성일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마음은 동감하고 함께하고 싶은데 막상 글로써 뜻을 나타낸다는 것이 여전히 잘 안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넷맹은 탈출했지만 수십년동안 습관이나 사고를 단번에 고쳐지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너무 염려 안하셔도 되지 않으까 싶습니다. 운영진들부터 계속 화이팅 할 것입니다.

전경녕님의 댓글

전경녕 작성일

  전 늘 그렇게 삽니다. 사진 한 장이 때로는 10만원을 넘을 때도 있지요. 늘 즐겁고 건강함 삶을 누리시길~~

김장복님의 댓글

김장복 작성일

  글 읽다가 숨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참으로 긴 강행군을 하셨군요.

최명순님의 댓글

최명순 작성일

  와우~~~ 얼마나 행복하셨고~ 순간당황하셨고~ 반가우셨고~ 기쁘셨을까!!! 더불어 여행 잘했습니다. 넘넘 고맙습니다. 관동별곡 아니 관동화곡? ㅋㅋ 어쩜 이리도 수려한 운치있는 멋진 글을 ......감사함다.

이향숙님의 댓글

이향숙 작성일

  행복한 가을 나들일 다녀 오셨군요~~더 멋스런 추억의 장을 만들어 드리느라 지갑이 잠시 바람을 쏘인듯 싶고~^^* 그 덕에 저희는 앉아서 즐거운 가을 동해안을 쏘다니는 기분입니다...상큼한 구절초의 모습과 해국의 모습도 좋은데 아슬아슬한 여행기까지 올려주셔서 얼마나 기쁜지요~감사드립니다~^^*

임영희님의 댓글

임영희 작성일

  추억에 남을 귀한 사진이군요. 줄감합니다.^^*^^

남명자님의 댓글

남명자 작성일

  ㅎㅎ. 닻꽃값 만큼 댓가는 지불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멋진 나들이셧네요.. 강원도 동해 산간에 피는 구절초들이 분홍빛이 진하더군요. 넓은잎 구절초가 많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