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생식물연구회

자유게시판

HOME>이야기>자유게시판

우리 꽃 이야기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귀병 댓글 14건 조회 3,968회 작성일 03-12-30 13:39

본문

1. 회상

  어느덧 2003년의 한 해도 노을 속에 저물어 가는 저녁해의 끝자락처럼 가물거리고 있습니다.
올 한해는 ‘한국야생화개발연구회’ 홈페이지 회원으로 가입하여 우리들꽃에 대해 유익한 정보를 배우고 익히게 되었음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싸이트를 통하여 직/간접으로 만난 회원 여러분과의 우리꽃 정보교류로 말미암아 식견과 활동무대를 넓히게 된 점에 대해서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생화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우리 연구회를 이끌어 가는 신임 송정섭 회장과 홈페이지 관리에 정성을 다하는 고재영님의 노고에도 감사 드립니다.
  또한 어려운 질문에도 척척 답을 해 주는 수원 패밀리의 홍도감님, 늘 정확하고 빈틈없는 박O배님, 자생국화에 대한 열정으로 한 우물을 파고 계신 이O경님, 늘 회원들의 생일 케이크를 챙겨주는 우리 싸이트의 감초 신O균님, 잡초원을 운영하는 이O구님, 본업 보다 야생화에 심취하여 전국을  누비는 열성을 가진 이O규님, 우리 싸이트를 영롱하게 가꾸는 이O섭님, 늘 넉넉한  큰형님 같은 김O복님, 김O환님, 다정다감한 누이 같은 지O영님, 김O주님, 가까이 느끼면서도 쉽게 만나지 못했던 김O기님, 불편함에도 포토샵 CD를 전해주신 정O해님… 그 외 미처 생각나지 않는 많은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중학교 때까지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랐습니다.  문만 열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온갖 나무와 풀들에서,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 자연의 섭리조차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일들이 일상으로 반복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여겨 왔었습니다.
마당 가장자리에 심던 댑싸리, 어린순을 나물하던 비름나물, 명아주나 산에서 흔히 보던 곰취, 나물취, 참나물, 두릅 등 불과 몇 가지 외에는 이름조차 없는 풀로만 알고 자랐는데, 이 땅에 자라는 모든 풀과 나무에도 사람처럼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었음을 알고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올 여름 유명산 야생화동산에서 만난 ‘벼룩이울타리’나, 어릴 때 시큼한 맛에 가시가 있음에도 날로 씹던 풀이 시어머니의 고약한 심성을 그대로 나타낸 ‘며느리밑씻개’ 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 식물마다 기이한 이름을 붙인 명명가의 기발한 발상에 탄복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우리 연구회원이 되고 또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직접 가꾸면서, 여름 밤하늘의 별 수만큼이나 사계절에 걸쳐 이 땅에 자라고 피어나는 수많은 기화요초에서 생명의 경이와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제가 가꾸는 정원에서 우리 자생들꽃으로만 알았던 바위취, 꽃범의꼬리, 자주달개비, 애기범부채, 그리고 작약마저 원예식물로 분류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의 몽매함에서 깨어나고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산골마을에서 흔히 보던 풀과 잡초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산골마을에는 우리꽃을 가꾸고 아라리를 보급하며 길손을 반갑게 맞이하는 어머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은 예민의 ‘어느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를 속으로 부르며 마음은 고향을 향해달려 갑니다.



      아우라지의 봄

먼산
연두 빛 부리 고운 산새들이 날아 들 즈음
쨍 하고 얼음장 깨지는 소리에 봄은 열리고
갈금마을 논두렁에서 송아지 울음 들릴 때
앞 뒷산 진달래는 사태져서
아우라지 강물에 피보다 진한 빛을 드리우네.

그리움을 부르는 한 낮의 뻐꾸기 울음에서
그리운 이름들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얼굴들 떠오르면
마음은 코발트색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에 실려
온 마을의 옛 동무들을 찾아 헤매고 있네.

길섶에 눈처럼 피었던 조팝나무
송천강 바위틈에서 해맑은 자태를 비춰보던 물철쭉
골지천 강변 따라 무심하게 자리한 병꽃나무
학교 옆 무덤가에 흔히 피던 노랑민들레, 할미꽃 무리
꺾어 들고 함께 뒹굴며 짓뭉개던 그리움들
아우라지의 봄은 이미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와 있네. (2003. 3. 2)

2. 생명의 서

  겨울의 끝자락, 아직은 잔설이 남아있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연약하지만 생명의 탄생을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양지에서 눈을 녹이며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 개울가의 얼음짱을 뚫고 노란 꽃술로 생명을 잉태하는 앉은부채, 보송보송한 솜털과 앙증맞은 꽃망울로 봄을 알리는 노루귀에서 미미하지만 생명의 태동을 알려주기 시작하면, 이어서 바람처럼 골짜기 마다 피어나는 바람꽃 무리,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제가 좋아하는 홀아비바람꽃, 숲바람꽃, 세바람꽃, 꿩의바람꽃 그리고 모데미풀, 한계령풀, 설앵초…. 봄은 그렇게 시작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밤이면 꽃잎을 오무려 생명을 간직하고 아침햇빛을 받으면 다시 피워 대자연과 호흡합니다.

  어릴 때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 하며 즐겨 부르던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라는 노랫말이 귓가에 맴돌 때 쯤이면 냉이 종류도 싸리냉이, 황새냉이, 좁쌀냉이, 말냉이, 다닥냉이, 콩다닥냉이, 는쟁이냉이, 미나리냉이, 나도냉이, 개갓냉이 심지어 고추냉이 까지 미처 구분을 못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에 아연하기만 합니다.
  또 쌉쌀하고 매콤하고 얼얼하게 담근 고들빼기 김치가 미각을 돋굴 때 고들빼기나 씀바귀나 이웃사촌으로 치부하였는데 씀바귀도 좀씀바귀, 벌씀바귀, 벋은 씀바귀, 그 팔촌인 방가지똥… 씀바귀 종류도 만만치 않음에 이내 앎의 한계에 부딪치곤 합니다.
  제비가 올 때쯤 꽃이 피어서 제비꽃이라 한 것도 보라색 한 가지 인줄 알았는데 노랑색, 흰색, 담홍색 등 색상도 여러가지 이지만 종류도 잎맥에 흰줄무늬가 뚜렷한 알록제비꽃, 호제비꽃, 메제비꽃, 왜제비꽃, 자주잎제비꽃, 털제비꽃, 고깔제비꽃, 콩제비꽃과 흰색의 남산제비꽃, 흰제비꽃, 금강제비꽃, 왕제비꽃, 흰젖제비꽃, 졸방제비꽃 그리고 노란색의 노랑제비꽃… 흥부집에 박씨 물어주던 제비야, 다시오면 박씨 대신 머리 속에 들어갈 만능 컴퓨터 하나 가져다 주렴. 이 제비꽃 모양 다 기억할 수 있도록.
  봄볕이 따사로워지면서 조경용 잔디밭이나 들판에 잡초로만 치부하여 사정없이 뽑아 버리던 풀 에게도 이름이 있음에 탄성을 자아 냅니다.  이름하여 봄맞이꽃, 꿩의밥, 꽃마리, 꽃바지, 꽃다지, 개불알풀, 주름잎, 속속이풀, 뽀리뱅이, 솜나물, 벼룩나물, 쇠별꽃, 방동사니, 괭이사초, 살갈퀴… 신은 이런 볼품없는 풀들에게 마저 평등하게 이름을 내렸나 봅니다.
  고운 연두색 잎새로 산의 모습이 채색되어 갈 때 숲 사이에 피는 현호색 종류는 왜 이리 얄팍한 지식을 현혹시키는지?  현호색과 댓잎현호색이야 쉽게 구분되지만 빗살현호색, 왜현호색, 점현호색, 들현호색, 애기현호색, 심지어 자주괴불주머니도 현호색으로 현혹시킵니다.  이때쯤의 산에는 노란색의 피나물과 매미꽃이 그게 그것으로 보이고, 들녁엔 민들레와 서양민들레가 모호한 꽃받침으로 혼동을 주기도 합니다.  아파트 뒷편에 흔히 피는 꽃의 이름을 둘째아이가 물었을 때 ‘애기똥풀’ 이라고 자신있게 대답 못하고 ‘기억이 안나는데…’라고 얼버무린 일도 새롭기만 합니다.

우리집 정원의 봄은 노루귀의 앙증스런 모습으로 첫 선을 보이면서 봄바람에 휘날리는 처녀치마의 치마자락으로 연자홍색의 깽깽이풀 꽃을 피우면 뭇 시선을 끌어 모으기 시작합니다. 흰색과 보라색의 하늘매발톱꽃이 납작한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연분홍 금낭화와 어울어질 때, 쌍촛대로 불을 밝힌 천남성 아래로 무늬둥글레가 작은초롱을 줄줄이 매달고 밤을 밝힙니다.
겨울을 이겨낸 삼색제비꽃이 팬지인양, 제비꽃인양 자태를 뽐내면 풍차를 돌리는 앵초, 복주머니  모양의 개불알꽃이 담홍색 화색을 자랑합니다.  꽃잔디를 경계 삼은 화단 가장자리에 붓꽃과 각시붓꽃이 각축을 할 때, 그늘진 나무 밑에는 바위취와 줄무늬비비추가 제자리를 지키며 먼저 핀 돌단풍의 향기를 이어 갑니다. 아, 어릴 적 학교 재래식 화장실의 파리 애벌레 구제한다고 의무적으로 그 뿌리를 캐오라고 하여 짓찧어서 화장실에 뿌리던 할미꽃. 덕분에 고향마을에는 지금도 할미꽃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백리향꽃이 백리 밖의 벌들을 불러 모으고 있을 때 동의나물과 피나물이 노란색을 띠우면 이에 질세라 질긴 생명력을 가진 미나리아재비가 노랑의 원조임을 자랑합니다. 그 옆에서 제주양지꽃이 ‘나도 노랑!’ 이라고 외치며 땅을 기고 있고, 족두리풀, 은방울꽃, 금새우난, 자란, 감자난, 삼지구엽초, 연령초, 돌나물, 머위, 뱀딸기, 흰제비꽃, 섬말나리…. 다 기억도 못하는데 12월 30일의 새벽은 다가 옵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려 사랑의 씨앗을 가슴에 심어줄 때, 뜰 한가운데 자리한 철쭉꽃 무등을 타고 하얀 십자가 목걸이 모양의 참으아리가 청초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봄볕에 졸음이 실려 오는 나른한 오후면 뻐국채에서는 전설을 간직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 옵니다. ‘뻐꾹~ 뻐꾹~ 뻐꾹~’ 
그리고 뻐꾸기 소리에 봄은 갑니다.


3. 한 여름밤의 꿈
    (다음에 시간되면 쓰지요)

댓글목록

송정섭님의 댓글

송정섭 작성일

  드뎌 김귀병님이 내공을 드러내기 시작하시는군요~ ^^  다음의 여름 가을 겨울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이양섭님의 댓글

이양섭 작성일

  귀병님~~ 금아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애들 고무줄 놀이 하던 노래를 기억하시네요... 지도 많이 했답니다....한 여름밤의 꿈을 기대해보면서....

김은주님의 댓글

김은주 작성일

  김0병님 저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해요...아름다운 후속씨리즈 기다립니다. 늘 오늘처럼 아름다우소서...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우와~!! 수필가라고 불러드려야 하는지,산문으로 봐드려야 하는지...놀랍니다.풀꽃과 나무,자연을 좋아하는 분들이 각기 대단한 능력들을 가지신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렇게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표현에 재삼 놀라면서 감사드립니다.

이태규님의 댓글

이태규 작성일

  일부는 제마음을 대변이라도 한듯합니다. 모쪼록 값진 한해를 보내시길 바라며 돌아오는 새해에는 훨씬 행복의 날을 일깨워 주시기바랍니다.

신흥균님의 댓글

신흥균 작성일

  흐~재밌당..."이경" "이구" "이규" "이섭" ^!^ 김귀병님 글에 한없이 빠져 들고 있습니다. 새삼 올 한해 머리속과 가슴속에 담아 둔 녀석들과 추억이 새록새록 솓아나고 있습니다. "김복" "김환" "김영" "김주" "김기"...

김기훈님의 댓글

김기훈 작성일

  멋진분들만 계신 곳이군요!

김귀병님의 댓글

김귀병 작성일

  정말 잠시 시간이 나서 평소에 담았던 말들을 짧은 시간에 표현하다 보니 부족하고 빠진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우리꽃과 우리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을 만나는 곳으로  영원히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홍기천님의 댓글

홍기천 작성일

  김귀병님의 생명의 서(봄 향기)를 마음의 정원에 심어 놓습니다.... 한 여름밤의 꿈도 기대됩니다....

지길영님의 댓글

지길영 작성일

  가족들 다나가고 이제 느긋하게 읽다보니 들꽃 만발한 꽃동산에서 신나게 뛰어 놀고 있는 착각까지 듭니다.  김귀병님의 풍부한 감성과 꽃사랑이 듬뿍 느껴집니다.~^^*

우정호님의 댓글

우정호 작성일

  재밉게 읽고 갑니다. 이야기 재주꾼이시네요  전 글솜씨가 없어서 몇자만 적는데...

김용환님의 댓글

김용환 작성일

  내가 하고싶은 말을 앞에서 다 해부렀네요.

조경자님의 댓글

조경자 작성일

  천국의 꽃밭에서 자라셨군요. 이그~~무지 부럽습니다.

화수진님의 댓글

화수진 작성일

  제가 이 곳 을 알게됨이 참 다행스럽습니다..이런 멋진 연구회에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기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