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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꽃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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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귀병 댓글 20건 조회 2,538회 작성일 04-01-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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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갈대의 노래

비바람을 이겨 낸 들판에서 풍요로움을 가득히 거두어 들이는 계절이 되면 아우라지의 가을은 한꺼번에 오지 않고, 아침햇살을 먼저 머금은 옥갑산 정상부터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여 산 중턱이 한창 불타 오를 즈음, 山頂의 거목은 이미 앙상한 나뭇가지로 푸르디 푸른 하늘을 휘저어 아우라지 강에 옥색 물빛을 풀어내곤 한다. 그 투명한 물빛 속에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 듯 육중한 산 그림자에 형형색색의 가을 색을 드리운 강물은 수 많은 화폭을 마치 이야기하듯 도란거리는 여울소리와 함께 흘려 보내고 또 보내고……. 산길을 바삐 걸어 온 촌로가 강변의 노송 그늘에서 담배 한대 피워 물고 한가로이 나룻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강변마을에서 애절하게 들려오는 아라리의 구성진 가락을 고향의 노래로 가슴에 담고 고향의 抒情을 아스라히 떠올려 본다.

                                구절리 가는 길

구절리 가는 길에 차창을 열면 신선한 산 공기 속에 가을 냄새가 가득 퍼진다.
구절양장 구비마다 구절초가 하늘거리며 반가움의 손짓을 하면
절로 나는 흥겨운 휘파람은 흥터마을 솔숲에서 불어 오는 실바람에 실려 산을 넘는다.

구절리 사람들은 구구절절 한 삶의 사연이 있다.
한창 번성하던 시절의 영화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아직도 애환 어린 검은 석탄가루를 뒤집어 쓴 스무 집 남짓한 마을의 아픔을
노추산 산행길도, 오장폭포의 물줄기로도 아우르지 못한 채
강변 길은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 발왕산 언저리를 스치고 있다.

대관령 목장의 폐수가 할퀴고 간 상처를
강변의 노송은 묵묵히 지켜보며 안으로만 다져 푸르른 기상을 곧추 세웠고
자개골 섬섬옥수로 어루만져 되살아나기 시작한 송천강에
무성하던 다슬기 무리, 날렵하게 침입자를 물리치던 꺽지,
한가롭게 바위틈을 헤집던 동자개, 늠름한 어름치는 언제쯤 돌아 올려나.

여인네의 속살같이 해맑은 자개골 아흔 아홉 구비에는
애기단풍이 애처롭게 바위에 매달려 산골의 가을은 깊어만 가고
길가에는 아직도 새까만 머루, 잘 익은 다래가 길손을 부르고 있다.
좁다란 산길은 하늘을 향하여 높다랗게 걸쳐있고
대광사의 향 내음은 십리 밖에 까지 퍼져 산골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상자개, 하자개를 바삐 오가는 동자개가 물고 떠내려 가는
빨간 단풍잎으로 이별을 대신 전할 때
적막이 골짜기를 가득 메운다.  (2000.10.6)

  휘영청 밝은 달빛에 오동잎 떨어지는 그림자가 창문 밖으로 비칠 때 들려오는‘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라는 노래로 부터 가을은 이미 우리 곁에서 무르익고 있다.  그 으악새(?) 찾으러 지구 한 바퀴 돌아 다닐 일은 없어도 창녕의 화왕산, 양산의 신불산, 포천의 명성산 그리고 내고향 정선의 민둥산엔 하얗게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암 월출산의 암벽 사이에 자리한 억새 사이로 떠오르는 구월 보름달의 그 휘황한 아름다움을 본 사람은 하얀 억새꽃과 둥근 보름달의 앙상블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그 희뿌연 아름다움은 효석이 일러 준 것처럼 ‘소금을 뿌린 듯 하얀 메밀 꽃’을 9월 초순에 봉평의 효석 생가 주변에서, 한강 둔치의 메밀 밭에서도 감상할 수 있으며,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초가집 지붕 위에 하얗게 핀 박꽃이 고고한 달빛을 받아 더 희게 보이던 순백의 아름다움은 기억 저편에 간직 할 수 밖에 없다.

  가을이면 작은 바람결에도 고개 숙여 흔들리는 갈대를 일컬어 여자의 마음 같다고 했던가.  냇가나 저수지 습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갈대나 달뿌리풀은 갈색의 칙칙함이 가을 햇살과 어울려 더 없는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낮은 곳에 자리한 것이 갈대라면, 높은 곳을 향하여 억겁의 세월에 걸쳐 무던히 피고 지는 것이 억새인 것 같다.  산등성이에 군락을 이루고 여리게 보이지만 곧게 뻗은 꽃대 끝에 여인네의 머릿결처럼 부드러운 꽃이삭을 솜털처럼 하얗게 달고, 바람 불 때마다 고개 숙여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서 한없는 겸손의 미덕을 발견한다.  환한 달빛을 받아 더욱 희뿌연 자태로 산자락을 휘감고, 바람이 불면 자기들끼리 흔들리며 부대끼며 ‘사사삭…’하고 내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억새들만의 사랑의 밀어, 그들만의 노래가 아닐까?  그리고 그 사랑의 고백을 불살라 눈송이처럼 자신을 흩날리는 마지막 장열한 모습이 얼마나 숭고하며,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기에 가을을 갈대의 계절, 아니 억새의 계절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이 가을에도 어김없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화본과 식물이 있다.  조나 귀리는 이삭모양으로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새, 기름새, 솔새, 줄, 띠, 개기장, 기장대풀…’ 봄부터 헷갈리는 머리는 이 가을까지도 계속된다.

  20년 전인 84년 늦가을, 지금의 내 아내와 3번째 만남을 운길산 산행길로 이어나갔다.  그 당시에는 뚜벅이족이라 이른 아침에 청량리에서 양수리행 시내버스를 타고 양수대교 검문소 앞에서 하차, 중앙선 철길 너머 수종사로 향하면서 내려다 보이는 두물머리 강물에 비친 가을 풍광을 자랑 삼아 환심(?)을 사고자 있는 말 없는 말 열심히 늘어놓고, 운길산 정상 넘어서 덕소로 내려오며 흙먼지 날리는 길가의 ‘도깨비바늘’ ‘도꼬마리’열매를 한 움큼 훝어내어 동행자에게 던져 놀라게 하고는 옷에 붙은 가시 떼어 준다고 은근슬쩍 몸을 건드려 본 사람이, 첫만남 이후 38일만에 결혼한 지금의 내 아내 홍○옥 이다.  그 동안 딸아이 둘 낳아 곧곧하게 기르고 바르고 열심히 살기에 한없이 고맙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런 추억도 가을이 내게 선사한 혜택이다.

  가을은 들꽃에서도 풍성한 결실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천남성, 배풍등, 까마귀밥나무, 청미래덩굴,백량금 등은 정열적인 색깔로 산새들을 유혹하여 자손을 퍼뜨려 가고, 어릴 때 산머루처럼 생긴 모양에 한 두알 씹다가 쓴맛에 뱉어버린 ‘댕댕이덩쿨’에 대한 기억은 비슷한 모양의 ‘밀나물’열매에게도 친근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뭐라고 해도 가을은 들국화의 계절이다.  구절초,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낙동구절초, 포천구절초, 한라구절초, 산국, 감국, 해국, 비자루국화, 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갯쑥부쟁이, 눈개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그리고 같은 국화과의 왕고들빼기, 가시상치, 왕씀배, 산씀바귀, 조밥나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들국화가 수수한 자태로 피었다가 기러기 울음따라 다시 지면 가을은 깊은 잠에 빠지기 시작한다.

  우리집 정원은 산부추나 층꽃, 감국의 자태만으로도 뭇시선을 붙잡지만 수 십 미터 밖에까지 풍기는 구절초의 그윽한 향기와 청초한 모습으로 가을임을 알려준다.  구석구석에 무리 지어 꽃이 피면 아파트단지에서도 늦가을의 꿀벌을 불러 모으고, 뜨락에 서면 구절초 아로마향에 정신이 쇄락함을 느낀다. 이 구절초는 포천구절초 보다 잎이 더 가늘고 꽃잎도 순백에 가깝다.  고향마을에서 산채한 것이나 진부의 야생화농장에서 분양 받은 것도 모두 같은 모양이다. 이○경 님이 분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바로 그 품종이다.  올해는 구절초로 술 담가두고 반가운 사람이 찾아오면 대접할까 한다.

5. 오장폭포의 겨울(에필로그)

댓글목록

김귀병님의 댓글

김귀병 작성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조금 버거웠습니다. 누구에게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시작한 짓이라 그만 둘 수도 없어, 조심스럽게 다시 올립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늘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양섭님의 댓글

이양섭 작성일

  감사합니다^ ^~~ 귀병님의 글을 읽고있으면 자연속에 묻혀있는 기분입니다. 얼마나 고마운지요^ ^~~금년에는 더욱 발전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송정섭님의 댓글

송정섭 작성일

  ㄱ,래요. 아우라지의 가을도 정말 멋질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모님도 예쁘게 만나고 사귀시고..., 정말 야생화한테 잘 하셔야겠네요~ 도깨비바늘이 없었으면 어떻게 손을 대보셨겠어요. 언감생심이었을텐데... ^^

이영태님의 댓글

이영태 작성일

  드뎌 가을이 왔군요.을매나 3탄을 기다렸는지 모른당께요.출판사쪽에서 전화 안오나요.^^

윤영미님의 댓글

윤영미 작성일

  늘...그리워집니다.

김은주님의 댓글

김은주 작성일

  김귀병님 고맙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님이 분신이라 하셨는데... 저는 님의 글을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읽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운 옆지기 송0옥님 그리고 예쁜 두 따님 언제나 늘 행복하소서...겨울이야기도 기다립니다.

이현구님의 댓글

이현구 작성일

  사모님  한테  안부  전합니다. 잘  읽었읍니다. 꾸벅

황숙님의 댓글

황숙 작성일

  ^^* ..  뵈오니 무지 반갑고..기쁨니다..  안녕 하십니까..  여름날에..  풀숲~~  개똥 벌레의 무리들..  꺼먼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는듯 합니다..  와닿는게 많았습니다...    그리구요..  맨 끄트머리의 말씀..    구절초술...  히...^^  ..  군침이 돕니다...      딱  !  !    한잔이면요..  비몽 사몽 ~`    혼비백산이 될수가  있어요..  기다림니다..^^  ...    꼬~  옥  ^^*  ㅡㅡㅡㅡㅡㅡㅡ*

조경자님의 댓글

조경자 작성일

  비록 풀뿌리밖에 먹을게 없는 가난함이 있다해도 이런곳에 살면 그냥 신선이 될곳같은...정말 좋은곳에 고향을 두셨네요. 부럽습니다.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읽어도 다시 읽어도 산골 호젓한 길을 둘이서 손잡고 미소로 바라보며 걷는 느낍을 받고는 하지요.고맙습니다.저도 짝지가 낙서를 해보라며 나중에 묶어주겠노라는데 게을러서 여엉 글로 옮겨지지가 않더군요.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대로 글로 옮겨지는 방법이 없을라나? ㅎㅎㅎ.....저도 조금 있으면 산골로 가려는데 그러면 몇 줄이나마 글로 써지려는지 모르겠네요.아름다운 글 잘 봅니다.

김은주님의 댓글

김은주 작성일

  길영님... 서울에 계시나요. 멍멍이는 어떻게해요~

이태규님의 댓글

이태규 작성일

  그져 설래는 마음 억누르고 있을뿐 무어라 달리 표현을 못하겠네유. 다만 봄이오면 기필코 그런곳들을 다가 가 보기로 굳게 마음 먹을뿐 입니다..

김귀병님의 댓글

김귀병 작성일

  1월의 마지막 날, 한결 포근한 주말 입니다. 입춘이 몇일 남지 않았는데 그 때쯤 들길을 걸으면 발바닥이 간질거려옴을 느낍니다. 겨우내 땅속에 움추렸던 냉이랑 씀바귀가 움터 올라오며 간질거립니다. ^^  아내 얘기에 피치 못하게 불출소리를 듣게 되나봅니다. -_-;;    꽃처럼 아름답고 고운 심성을 가진 분들이 모인 곳이기에 행복한 곳입니다.  아름다운 주말 되세요~

지길영님의 댓글

지길영 작성일

  김귀병님 같은 분이 114에 계시기에 저희들이 더욱 빛을 발하는것 같습니다. 활기차고 행복한 휴일 되세요.~^^*

홍기천님의 댓글

홍기천 작성일

  김귀병님의 글속에는 아름다움이 넘실대고,향기가 그득하며 가만히 귀를 귀울여 보면  심산유곡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도 여운을 남기고 흘러만 갑니다. 아마 김귀병님의 모습도...맘도... 이보다 이뽈것 같아요....^(^ 

허숙님의 댓글

허숙 작성일

  구절리 ..아우라지..여량..늘 가까이서 보고 느끼는 곳이지만 이렇게 님의 글로 만나니 더 한층 아름다운 수채화로 다가 옵니다. 아름다운 글 즐겁게 감상하며 어찌 그리도 적절하게 잘표현하셨는지..그저 감탄사 연발입니다. ^*^

신흥균님의 댓글

신흥균 작성일

  언제나, 몇번을 읽어보도 서정시 같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마다애 그리 이쁜 단어만 줄줄이 나오는지....

김귀병님의 댓글

김귀병 작성일

  마음의 고향과 현실의 고향은 세태의 변화에 따른 환경오염으로 너무 많은 괴리가 있습니다. 그저 옛날의 생생한 모습을 잊지 않고자 기억할 따름입니다.  올 봄에는 그저그런 곳이지만 회원여러분을 모실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그리고 허숙님, 혹시  강릉지역에 계신지요?

최명순님의 댓글

최명순 작성일

  이 사이트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주신 여러 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런 귀한 글을 읽게 해 주셔서...전 행복합니다.

허숙님의 댓글

허숙 작성일

  영월감자여요.어라연산...동강가 한마리 청둥오리..자맥질하며 혼자서도 잘노는 ..지난 여름 어머니 모시고 다녀온 구절리..노추산에서 도토리 주어 낑낑 하던 기억 님의 글로 다시 추억하니 감사합니다.^*^